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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제작 드라마가 늘어난 이유 — 편성과 제작 순서의 변화

'쪽대본'은 한국 드라마를 설명하는 말이면서 동시에 제작 방식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대본이 회차 단위로 완성되지 않고 낱장 단위로 촬영장에 도착하던 시절, 드라마는 방영하면서 찍는 물건이었다. 지금은 공개 시점에 전 회차가 이미 완성돼 있는 작품이 흔하다. 이 변화는 제작진의 결심 하나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해외 규제·노동법·자본이 각각 다른 방향에서 밀어붙인 결과다.

방영하면서 찍던 시절의 논리

생방송식 제작에는 나름의 합리성이 있었다. 첫 회 시청률과 게시판 반응을 보고 인물의 비중을 늘리거나 결말을 바꿀 수 있었다. 조연이 인기를 끌면 분량이 늘고, 반응이 나쁜 설정은 조용히 사라졌다. 제작사 입장에서도 편성이 확정된 뒤에 돈을 쓰니 위험이 작았다. 사전제작이 오래 정착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제작비가 더 들고, 시간이 더 걸리고, 무엇보다 시청자 반응을 반영할 수 없었다.

먼저 바꾼 것은 중국이었다

2016년 「태양의 후예」가 100% 사전제작으로 만들어진 배경에는 완성도 이전에 규제가 있었다. PD저널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2015년 4월부터 전편 사전심의를 거치지 않은 한국 드라마의 방영을 막았다. 중국 판권 수입이 제작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던 상황에서, 한중 동시방영을 하려면 전 회차를 미리 완성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촬영 일정과 대본 작업에 여유가 생겨 완성도에도 도움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출발점은 어디까지나 해외 유통 조건이었다.

주 52시간제가 촬영 달력을 늘렸다

두 번째 힘은 노동법이다. 2018년 개정 근로기준법은 근로시간 특례업종을 26개에서 5개로 줄였고, 여기서 빠진 21개 업종에는 방송업이 포함됐다. 특례에서 제외된 업종은 2019년 7월 1일부터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에 주 52시간 상한이 적용됐고, 50~300인 미만은 2020년 1월 1일, 5~50인 미만은 2021년 7월 1일부터 순차 적용됐다.

하루 20시간 촬영으로 회차를 맞추던 방식이 불가능해지자 촬영 기간이 늘어났다.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리포트는 52시간제 도입 이후 촬영 기간이 120일에서 180일 이상으로 늘었다고 정리한다. 방영 시작 전에 확보해야 하는 분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OTT는 '방영 중'이라는 개념을 지웠다

세 번째 힘은 공개 방식의 변화다. 전 회차를 한 번에 공개하는 방식에서는 '방영 중 반영'이라는 선택지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공개일에 16부가 모두 올라가는 작품은 정의상 100% 사전제작일 수밖에 없다. 동시에 전 세계 동시 공개가 기본이 되면서, 자막·더빙·심의 등 후반 작업에 필요한 시간도 공개 전에 확보돼야 했다.

제작비가 되돌릴 수 없게 만들었다

같은 리포트에 따르면 2018~2024년 드라마 평균 총제작비는 344억 원, 회당 평균은 약 31억 원 수준으로 10년 전의 2~5배가 됐다. 2024년 기준 일반적인 드라마도 200억~300억 원이 들고, 「오징어 게임」 시즌2는 출연료를 빼고 1,000억 원 규모로 알려졌다. 톱스타의 회당 출연료가 2~3억 원대, 톱작가의 회당 원고료가 2억 원에 육박하는 수준까지 오른 것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이 금액이 되면 촬영 중 대본을 바꾸는 비용이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세트, 해외 로케이션, 시각효과 일정이 모두 사전에 묶이기 때문이다. 사전제작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예산 관리의 전제 조건에 가깝다.

반사전제작이라는 절충

전부 미리 찍는 것과 찍으면서 방영하는 것 사이에 반사전제작이 있다. 방영 전에 전체 회차의 절반 이상을 찍어 두고, 방영이 시작된 뒤 초반 반응을 후반부에 일부 반영하는 방식이다. 후반 회차를 쫓기며 찍는 부담을 줄이면서 시청자 반응을 완전히 포기하지도 않는다. 주간 편성 드라마에서 현재 가장 흔한 형태로 꼽힌다.

방식시청자 반응 반영일정·품질주로 쓰이는 곳
생방송식 촬영가능후반부 일정이 몰려 위험과거 지상파 주간 드라마
반사전제작부분적으로 가능절충현재 주간 편성 드라마
100% 사전제작불가능일정 관리에 유리OTT 일괄 공개, 해외 동시 공개작
촬영과 방영이 겹치는 정도 — 세 가지 제작 방식촬영과 방영이 겹치는 정도 — 세 가지 제작 방식촬영 구간방영 구간생방송식 촬영반응 반영 가능반사전제작부분적으로 가능100% 사전제작반영 불가제작 시작종영
그림. 바로 위 표의 세 방식을 촬영·방영 구간의 겹침으로 나타낸 자체 제작 개념도입니다. 막대 길이는 실제 기간이 아니라 구조를 보여주기 위한 도식입니다.

사전제작이 만든 새로운 문제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뉴스핌이 2018년에 정리한 지적은 지금도 유효하다. 첫째, 완성된 뒤에는 반응을 반영할 수 없다. 초반 설정이 시청자에게 외면당해도 16부까지 그대로 간다. 둘째, 완성해 놓고 편성을 받지 못하면 자본이 묶인다. 같은 기사는 100% 사전제작 드라마가 임금 문제와 내부 갈등으로 촬영이 중단돼 예정일보다 3개월 이상 밀린 사례를 전한다.

편성 자리 자체가 줄어든 것도 부담을 키웠다. 지상파 드라마 편성은 2012년 91편에서 2023년 32편으로 줄었고, 전체 방송사 기준으로도 2017~2019년 연 120편 이상에서 2023년 78편으로 감소했다. 완성작이 공개 시점을 기다리는 상황이 구조적으로 발생하는 이유다.

시청자 입장에서 체감되는 변화도 있다. 방영 도중 인물의 성격이 갑자기 달라지거나 결말이 급하게 바뀌는 일이 줄어든 대신, 초반에 붙은 아쉬움이 끝까지 그대로 남는 작품도 늘었다. 완결된 이야기를 보는 것과 함께 만들어 가는 이야기를 보는 것은 다른 경험이다.

사전제작은 '좋은 제작 방식'으로 도입된 것이 아니라 해외 유통 조건, 노동시간 규제, 공개 방식의 변화가 겹치면서 남은 선택지에 가깝습니다. 시청률을 보며 결말을 바꾸는 드라마가 사라진 것도 같은 변화의 뒷면입니다.

출처

작성 기준일 2026-09-13 · 근로시간 제도와 제작비 통계는 개정·갱신될 수 있으니, 인용 전 고용노동부 및 각 기관의 최신 자료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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